소설 번역/[東方Project]

레이무와 나비의 꿈

spica_1031 2012. 6. 12. 02:07

출처 : 동방창상화 (투고일자 : 08/01/05)
작가 : 暇人KZ 님
번역 : 스피카

1. 다른 곳으로 퍼가지 말아주세요.
2. 본문중의 (하늘색)은 제가 단 주석입니다.
3. 오타 및 잘못된 번역의 지적은 감사히.
---------------------------------------------------------------------------------------------------★


레이무와 나비의 꿈






눈부시다.
태양의 빛이 눈꺼풀의 저쪽 편에서 눈동자를 찌른다.
어디에선가 작은 새가 노래하듯 시끄럽게 우는 것이 들린다.
꿈을 꾸고 있었다.
어떤 꿈인지는 이제 떠올릴 수 없지만….
몹시 나른하다.
이미 몇 개월이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관절이 으득으득 삐걱거린다.
마치 지금의 지금까지 죽어있었던 것처럼.
…아니, 자고 있었을 뿐이지만.
즉, 그거다.
누구라도 꺼림칙해 할 만한 순간이 찾아왔던 것이다.
요컨대 아침.

「……졸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공격적인 햇빛을 차단한다.
이불, 이 아닌데. 타월 모포(タオルケット(타월 천으로 된 여름용 홑이불))인가 그건가.
그러고 보니 덥다.
지금은 여름이었던가.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다.
일어나고 싶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좀 더 자자.
아니, 조금이 아니라 낮 정도까지.

「어~이!」

으겍.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사다.

「어~이, 레이무!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냐!」

우당탕 계단을 올라오며, 키리사메 마리사는 소리 지른다.
최악이다.
하필이면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른 아침부터 오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졸리다.
자게 냅둬. 부탁이니까.
어떻게 텔레파시로 의사가 통하지 않을까 계속 빌어 보지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도 없고.
변함없이 계단을 올라오는 시끄러운 발소리가….

…어?
우리 신사에 계단 같은 게 있었던가…?

「슬슬 일어나라니까. 지각한다고.」

딸칵, 하고 문(ドア(door. 서양식 문))을 열고, 마리사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문?
우리 집 칸막이는 전부 장지문이었을 텐데….

아니,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자자.

「야.」

무시 무시.

「부르고 있잖아.」

큿, 오늘은 끈질기네.
한가하면 내가 아니라, 홍마관에 도둑질이라도 하러 가면 좋을 텐데.

「너 아직 개근이지? 지각하면 엉망이 돼버리잖아.」

개, 개근?
개근이라니, 뭐야?
…지각?

「적당히, 하라곳!」

파앗!
하고, 타월 모포가 성대하게 벗겨졌다.

「으으~ 앞으로 3시간만 자게 해줘.」

「바보 같은 말하지 말고. 얼른 아침 먹고 갈아입어.」

「뭐냐고오- 나가기로 했었던가…?」

「…너, 언제까지 주말 기분으로 있을 거냐? 벌써 월요일이라고. 월요일.」

월요일?

월요일이 어쨌다는 거지.

「잠에 취해 있는 거야? OK, 알았어. 죽음의 선고를 해 주지.
오늘부터───」

충분히 시간을 두고 나서 마리사는 말했다.

「———학교다.」





~기상~





학교.

…학교, 인가?
뭐야, 마리사는 어딘가의 학교라도 다니기 시작한 건가.
학업에 눈을 뜬 것은 기특한 이야기지만, 왜 나까지 말려들고 있는 것인가.
나는 무거운 머리를 질질 끌면서, 마리사에게 이끌려 계단을 내려간다.

「유카리 씨. 죄인을 연행했습니다.」

「어머어머. 미안하네, 마리사 짱. 손님인데. 자, 레이무도 슬슬 일어나렴. 잠꾸러기네.」

눈이 뜨이지 않는다.

눈앞이 깜깜한 채로, 털썩, 하고 마리사가 날 의자에 앉혔다.
조금의 잠기운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이런이런. 엿차!」

—찰싹

「으햣!?」

갑자기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았다.

놀라서 눈을 뜨면, 눈앞에는 마리사가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컵을 한 손에 들고, 기가 막힌다는 듯 이쪽을 보고 있다.

「잘 잤어? 레이무.」

「……?」

컵의 냉기로 간신히 머리가 회전하기 시작한 나에게 현기증이 날 정도의 위화감이 덮쳤다.

무엇에 위화감을 느낀 걸까.

…전부다.

눈에 비치는 것 전부에게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눈 앞, 나와 같은 테이블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틀림없이 키리사메 마리사다.
그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하야네. 마리사.」

「당연하다고. 하복이니까.」

하얬다.

무엇이냐면, 복장이.
평소의 흑색 투성이의 마녀 스타일이 아니다.
덤으로 뭐냐.
나는 테이블에 붙어 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건가?
의자? 테이블?
우리 신사에 그런 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여기, 어디?」

「너희 집이다.」

「또 그런 농담을.」

이곳은 완전히 낯선 집이었다.

게다가 마리사는 이곳이 우리 집이라고 한다.
우리 집은 신사다. 하쿠레이 신사.
이런 서양식의 집 같은 게 아니다.
이곳의 이미지는 앨리스의 집에 가깝다.

코타츠가 아니라 테이블.

방석이 아니라 의자.
부엌이 아니라 키친.
거기에 서 있는 것은,

「……누구?」

「누구냐니, 너말야…. 유카리 씨인게 당연하잖아.」

유카리 씨?

더더욱 누구냐.
분명히 나와 마리사가 공통으로 아는 이들 중에, '야쿠모 유카리'라고 하는 수상쩍은 틈새 요괴가 있다.
하지만, 마리사는 유카리를 '씨'를 붙여 부른 적은 없다.
또, 앞으로도 영원히 부를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저건 누구야?

「자, 기다렸지. 얼른 먹지 않으면 학교 지각해버릴 거야?」

딸깍, 하고 눈앞에 빵과 달걀 프라이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은 그 인물은 …그렇다. 틀림없는 야쿠모 유카리였다.

이다음은 탁탁, 하고 플로어링(flooring)이 깔린 복도를 달리는 어수선한 발소리가 들려오고,

「그럼 다녀올게요, 엄마.

 마리사도 와 있었니. 느긋하게…하고 있을 시간은 없구나. 레이무도 학교 지각하지 마.」

「전철은 늦지 않았니, 란? 서둘러도 차는 조심하렴.」

「아직은 괜찮아, 엄마!
그럼 다녀올게요~ 첸, 얌전히 있어야 한다~?」

복도에서 쏙 얼굴만 내밀고 인사한 슈트(suit) 차림의 여성은 발밑의 고양이에게 부비부비 뺨을 비비고 나서, 숨 가쁘게 현관을 뛰쳐나갔다.

…저게, 란?

야쿠모 란?
꼬리도 귀도 없었지만….

「…….」

「…왜 그래, 레이무? 얼른 먹어버리라고.」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어디야.

여긴, 어디야?
뭐야, 이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안색이 새파랗다고? 정말로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

마리사『와 너무 닮은 그 녀석』은 내 얼굴을 걱정스러운 듯이 들여다보았다.

틀려.

마리사가 아니다.
저기에 있는 것도 유카리가 아니다.
분명하게 비정상인 이 상황 속에서 태연하게 있는 저들은 이 상황처럼 비정상적인 존재다.

…아니, 그렇군.

주위가 비정상적인 게 아니다.
나만이 『이상』한 건가.
그러니까 모든 것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인가.

진정해.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거야.
쿨 해져라. 하쿠레이 레이무!

「…OK. 우선 상황을 확인하죠.」

「……뭐~? 상관없지만 먹으면서 해 달라고. 진짜로 시간이 아슬아슬하니까 말이야.」

우선, 자신이 놓여 있는 상황.
아침에 일어났더니, 돌연 낯선 장소에 있었다.
이 마리사(가짜)가 말하길, 이곳은 나의 집인 것 같다.
나와 마리사(가짜)는 오늘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얼른, 이 유카리(가짜)가 만들어 준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지 않으면 왠지 난처해지는 것 같다.
주변이 분명히 태연한 점을 봐서는 아무래도 이상한 것은 내 쪽이라….

「……그렇군.」

「됐으니까 빨리 먹어.」

이건 꿈이다.

내가 드르렁~ 콧방울을 부풀리고 있는 동안에 꾸고 있는 꿈.
실제로 부풀리지는 않지만 말야!!

……어쨌든 상황으로 봐서, 여긴 아마도 결계 밖일 것이다.

요괴의 요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고, 조금 전부터 밖에서 붕붕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마 『자동차』라던가 하는 탈 것이다.

이곳은 환상향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혼자 자고 있는 동안에 결계 밖으로 내던져진 것도 아닌 것 같다.
마리사(가짜)도, 유카리(가짜)도, 란(가짜)도 마치 환상향에 있던 그녀들과 동일 인물인 것 같다.
비슷하게 닮은 타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닮아 있다.
덧붙이자면, 잠에서 깬 직후의 깜짝 이벤트(寝起きドッキリ:몰래 카메라 같은 것)도 아니겠지.
유카리는 어쨌든, 마리사나 란은 결계 밖으로는 나올 수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꾸고 있는 꿈이다.

이 꿈 속 세계에서 나는 신사가 아니라 이 집에 살고 있고, 마리사(가짜)와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러한 설정일 것이다.
그렇군. 이해했다.
오물, 하고 식빵을 한 입 먹는다.

「있지, 마리사(가짜).」

「뭐냐, 그 (가짜)라는 건.」

「조금 부탁이 있는데 괜찮아?」

「먹는 페이스를 1.5배속으로 올려 준다면 못 들을 것도 없지.」

와구와구와구.

「OK. 뭐든 말해 봐.」

「있잖아. 아무래도 나, 기억상실에 걸린 것 같아. 어제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어.」

「호오~ 그래서?」

「그래서 현재 내가 놓여 있는 상황을 가능한 한 자세하게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되도록 우스꽝스럽게, 원고용지 400매 분량 이상으로 부탁해.」

「알았다. 문제없다고.」

마리사(가짜)는 입담을 가다듬으려는 건지, 컵의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그래서, 어디가 농담?」

「되도록 우스꽝스럽게, 부터.」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거야?」

「평소의 마리사 정도로 진심.」

「장난치지 마.」

「장난치고 있을까봐?」

흠흠, 하고 마리사(가짜)는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하고, 순간, 부엌에 있는 유카리(가짜)의 모습을 보았다.

이쪽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기억상실이라는 거, 진심이냐?」

마리사(가짜)는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며 태도를 바꿨다.

거짓말이지만 진짜라고 해둔다.
'환상향에서 온 다른 『하쿠레이 레이무』입니다.' 라고 설명할 정도로 나는 바보가 아니다.
그런 건 마리사(가짜) 입장에서 보면, 망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된 불쌍한 사람이다.
정신착란자보다 기억상실자가 되는 편이 조금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여기서 마리사(가짜)에게 정보를 꺼내기 위한 방편이다.

「진심. 전부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정보가 빠져있는 것 같아. 너니까 상담하고 있는 거야.」

「우선 유카리 씨에게 상담하는 편이…….」

「누구에게 의지하면 좋을지도 모르겠어. 그런 의미도 포함해서 현상 설명을 해 줘. 지금 당장.」

「……알았어.」

안심했다.

적어도, 이쪽에서도 마리사는 의지가 될 것 같다.
이제 슬슬 '(가짜)'는 때두도록 하자.
어쩌면, 이 마리사는 환상향의 마리사와 동일한 위치에 존재하는 인물인 걸까.

「우선 너부터 할게.

 하쿠레이 레이무. 17살. 사립 동방 학원 고등부, 2학년 D반. 덧붙여서 여고다. 동아리는 귀가부.
 성적은 중상(中の上), 나보다 조금 낮은 정도지. 착실하게 공부해라.
 현재로서 개근인 점은 장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렇군.

역시 여긴 환상향이 아니고,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 설정인 것 같다.

「귀가부라는 건 뭐야?」

「니트다.」

윽…….

「다음은 나다.

 키리사메 마리사. 너랑 마찬가지로 17살. 사립 동방 학원 고등부, 2학년 D반. 육상부.
 성적은 상하(上の下). 난 너랑 다르게 성실하게 있으니까 말이다.
 너와는 유치원부터 쭉 같은 학교인 지긋지긋한 사이다.
 반은 9할 정도 같고, 자리도 대개 같은 자리라서 운명조차 느껴버릴 정도의 지긋지긋한 사이지.
 집도 꽤 가까워. 네가 이쪽 집으로 이사해 오기 전에는 이웃이었어.
 덧붙여서 우리 집은 골동품가게. 골동품가게 자체가 이미 골동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마리사와는 이쪽 세계에서도 지긋지긋한 관계인 것 같다.

뭐, 그 덕분에 지금 이렇게 도움 받고 있는 거겠지만.

「……이사라니?」

「그것도 포함해서 지금부터 설명할게.

 다음은 유카리 씨. 지금 부엌에서 설거지 하고 있는 사람이다.
 야쿠모 유카리 씨. 나이는…… 잘 모르겠는데.
 요리도 잘하고, 미인이고, 박식하고, 게다가 상냥해. 정말 퍼펙트 주부다. 부러울 따름이라고.」

위험하게도 마시다 만 우유를 성대하게 뿜을 뻔 했다.

그 게으름뱅이가 퍼펙트 주부라고!?
하쿠레이 대결계가 붕괴한다고 해도, 그것만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곳!!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너희 아버지와 재혼할 예정이었어.

 유카리 씨도 남편분이 돌아가셨던 상태라, 의기 투합했었다나.
 그런데 혼인신고 하기 전에 너희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그러한 사정 때문에 지금도 성은 '하쿠레이'가 아니라, '야쿠모'인 채야.
 그리고 천애고독의 몸이 된 너를 양자로 삼아서 돌봐주고 있어.
 즉 여긴 유카리 씨의 집이고, 유카리 씨는 너의 양어머니.」

심하다.

너무 심해.
유카리가 내 양어머니!?
이런 설정으로 만든 녀석은 얼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바늘을……

…………나였나.

내 꿈이었지.
역시 지금 건 없었던 걸로.

「조금 전 나간 사람이 란 씨다.

 야쿠모 란 씨. 24살. 대학은 외국 쪽에서 유학했고, 현재는 사장 비서라나 봐.
 빠릿빠릿한 캐리어 우먼이라는 걸까. 멋지다고.
 유카리 씨의 딸로 무엇을 시켜도 완벽하게 해내는 퍼펙트 초인이지.
 이 퍼펙트함은 유전자에 새겨지고 있는 걸까. 부럽구만.
 하지만 고양이를 안으면 성격이랄까, 인격이 바뀌는 점이 옥에 티지.
 덧붙여서 거기에 있는 게 첸. 애완동물인 고양이다.」

란은 이쪽 세계에서도 우수한 것 같네.

첸은 애완동물인가. 하하하.

이렇게 보면, 이쪽 세계에서도 별로 위화감은 없는 것 같다.

이곳이 결계 밖이고, 내가 학생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환상향과 그다지 차이점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유카리는 논외다.
너무나 이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을 정도다.

「……고마워. 상황은 대강 파악했어.」

「아니, 전혀 하고 있지 않아.」

리사는 고개를 젓고는, 팔에 감겨있는 시계를 나에게 들이대었다.

8시 50분.





~등교~





「서두르라고, 레이무!!」

현관 저 편에서 마리사가 소리치고 있다.

으음, 그렇게나 촉박한 걸까.
잘 모르겠다.

현관에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가볍게 옷차림을 확인한다.

우와, 그러고 보니 무녀 옷이 아닌 다른 옷을 입은 건 몇 년 만일까?
마리사와 같은, 하얀색이 베이스인 제복.
학교에는 지정된 제복을 입고, 등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다.
……저기, 스커트 짧은데요.

「레이무, 손수건이랑 티슈는 제대로 챙겼니?

 서두른다고, 너무 속도 내면 안 돼. 어머, 리본이 비뚤어졌네.」

마중 나온 유카리가 서두르면서도 유연하게, 잘 알 수 없는 동작으로 내 제복의 리본을 만지작거린다.

우와. 뭐야, 이 광경…….

있기 불편한 듯이 마리사에게 시선을 보내면, 마리사는 이쪽을 보고,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저 자식……!!

「……이걸로 끝. 잘 다녀오렴.」

「…………응.」

안 된다. 지내기 너무 불편하다.

극한까지 줄인 짧은 인사를 남기고, 나는 허둥지둥 현관을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등 뒤에서 정말 말할 수 없는 듯한 시선이 지긋이~ 하고 향해지고 있었다.
어깨 너머로 돌아보면, 유카리가 이 세상이 끝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배웅하고 있었다.

「…………다녀오렴.」

「윽, 으으……. 다, 다녀올게요. 유카리………씨.」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받은 유카리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 지으면서, 손을 흔들어 나를 배웅했다.

설마 내가 유카리에게 『다녀올게요.』를 말하는 날이 오리라곤…….
게다가, '씨'를 붙여서 불러 버렸다…….

저 사람은 딴 사람, 저 사람은 딴 사람, 저 사람은 딴 사람…….

나는 스스로에게 타이르면서, 마리사의 곁으로 갔다.

내가 유카리를 '씨'를 붙여서 부른 직후, 그저 일순간.

조금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곧바로 미소로 지워져 버렸지만.



              * * *



「미안, 기다렸지.」

「오우! 마침 버리고 갈까 생각하던 참이었다고.」

내가 확, 하고 가방을 치켜든 것을 보고, 마리사는 적당히 웃어넘기며, 워워~ 거리고는 가볍게 피했다.

말 취급하는 쪽이 실례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있지, 아직 인정해 줄 수 없는 거야?」

'뭘 말야.' 하고, 언짢은 목소리로 대답하려다가 나는 말을 삼켰다.

지금 마리사의 표정이 얼렁뚱땅 넘길 수 있는 게 아녔기 때문이다.

「유카리 씨말이다.

 너에게 친어머니가 있고, 복잡한 심경이라고는 생각해.
 나 같은 외부인이 말해도 될 문제가 아니라고는 알고 있지만 말이야.
 유카리 씨도 너에게 인정받으려 노력하고 있어. 한 번 정도는 『엄마』라 불러 드려도 괜찮지 않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이쪽 세계에서 오늘까지 지낸 『하쿠레이 레이무』의 문제니까.
그러한 의미에서는 나도 외부인임이나 다름없다.
나에게는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대답하기 힘든 듯 한 나를 보고, 마리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 기억 못하고 있었지.
어쨌든 지금은 평소처럼 학교 가자고.
 평소대로 생활하다보면, 전부 떠오를 테니까 말이야. 부족한 기억은 내가 커버해 줄게.」

이런 때, 역시 마리사는 든든하다.

마리사의 밝은 대응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아마, 마리사도 그럴 작정으로 도맡아 밝게 접하고 있을 것이다.
밝은 것과 와 불성실함은 반드시 같은 뜻은 아니다.
이쪽의 마리사도 그러한 점은 같다.
그러나 내가 떠올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니까.

「자, 얼른 자전거 타.」

「타라니. 마리사, 빗자루는?」

「…………자원봉사로 청소하다 와서 늦었습니다? 참신한 변명이지만 웃을 수는 없을 거 같은데.」

「아,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런가.

결계 밖에는 마법이라든가 없는 건가.
즉, 빗자루로 나는 것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마리사에게 들키지 않게 살짝 시험해 봤다.

…………날 수 없다.

이쪽 세계에서는 나 역시 비행 능력이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니, 나 혼자서 날아가도 큰 소란이 일어날 뿐이니까 하지 않지만.

「그래서, 자전거란 건 뭐야?」





~아침 조회~ 시키 에이키





복도를 전력으로 질주하면서, 나와 마리사는 서로를 헐뜯는다.

「집에서부터 전력 질주라니, 바보 아냐!?」

「바보는 너지!! 자전거 타는 방법조차 기억 못한다고!?」

「어쩔 수 없잖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야!! 어떤 천재도 태어났을 때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

「아무리 운동 신경이 괴멸적인 꼬맹이라도 초등학교에서 타는 거 배운다고!!」

「이 무지막지 더운 한 여름의 쾌청한 날에 전력 질주라니, 바보냐!!」

「아아, 정말 시끄럽넷!! 쓸데없이 체력 쓰지 마!! 교실은 거길 돌자마자다!!」

—다다다닷, 콰앙!!

「이리 오너라!!」

성대하게 소리 지르며, 마리사는 힘차게 문을 열었다.

와르르 밀어닥치듯 둘이서 교실로 뛰어든다.

「좋아, 세이프다!! 종은 아직 울지 않───」

딩~ 동~ 댕~ 동~

종이 울렸다.

이게 울리기 전에 교실에 도착하지 않으면 지각이 돼 버리는 것 같다.
빠듯하게 시간에 맞춘 걸까.

「……………아웃.」

한마디 불쑥,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심판. 어딜 보고 있었던 거냐!! 지금 건 어떻게 봐도───」

「제 판결(ジャッジ(judge))에 뭔가 불만이라도? 키리사메 마리사 양.」

*원문은 '霧雨 魔理沙さん(키리사메 마리사 씨)'.
일본에서는 선생님이 학생을 부를 때, 성 혹은 이름 뒤에 '~さん(~씨)'을 붙여 부르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기서는 '~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번뜩, 노려보자, 마리사는 돌이 된 것처럼 경직되었다.

「어, 어떻게 봐도………아웃이네요~ 하하하하.」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마리사는 선선히 자신의 생각을 집어넣었다.

교단에 선 그 인물은 마치 창이라도 내밀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푹, 하고 꿰뚫어, 마리사를 억지로 자리에 앉게 했다.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하쿠레이 레이무 양. 모처럼 개근상이었는데, 유감이네요.

 하지만!! ……예외는 없습니다. 자리에 앉으세요.」

「네, 네…….」

무섭다.

학교라는 곳은 군인을 육성하는 곳이었던가?
아니었던 것 같다.
마리사는 내게 손짓하였고, 난 옆자리에 앉았다.

「등교라는 것은 즉, 학생이 면학에 힘쓰기 위해서 학교에 오는 것.

 즉 학교에 와서, 수업을 받을 자세가 완전하게 갖춰져 있는 상태가 아니면 안 됩니다.
 자리에 앉을 때까지가 등교입니다. 알겠습니까?」

「귀신! 염라!!」

「거기선 염라가 아니라 악마겠죠.
 그런데 방금 등교한 키리사메 양.
 지금 당신들이 교실에 뛰어 들어오기 직전에 복도에서 큰 소리를 지르던 학생과 복도를 전력 질주하던 학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보지 못했습니까? 
조금 설교가 필요한 학생 같기에.」

「그, 그게. 하하하하하. 어디의 어떤 녀석일까요…….」

「이런, 키리사메 양. 숨이 거친 듯합니다만. 마치 여태껏 전력으로 달리고 있던 것 같아요?」

「선생님, 출석!! 출석 부르자고요!!」

두통을 가라앉히려는 듯이 고개를 젓는 선생님.

'정말이지.'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아이를 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선생님은 출석부를 펼쳤다.

「뭐, 그 학생에 관한 것은 놔두도록 합시다. 출석을 부르겠습니다.」

「이얏호! 에이키 선생님, 최고! 일생 따르겠습니다!」

「거절합니다. 내년에는 확실하게 졸업해 주세요.」

에이키.

그렇다. 교단에 선 저 인물은 분명히 시키 에이키·야마자나두, 그 본인.
이쪽 세계에서도 역시나 성격은 귀찮은 것 같다.

「그렇지. 저 사람이 우리 반의 담임이야.

 시키 에이키 선생님. 나이는 무서워서 못 물어보겠어. 2학년 D반의 담임.
 담당 교과는 윤리. 동아리 고문은 특별히 없음.
 교칙이나 규율에 무지막지 엄격한 사람으로, 에이키 선생님의 사전에 덤이라는 문자는 없는 것 같아.
 별명은 야마(ヤマ) 씨. 덧붙여서 야마 씨의 '야마'는 염라(閻魔)를 말하는 것 같아.」
*閻魔 : 산크리스트어 및 팔리어의 यम(Yama)의 음역.

납득.

이쪽 세계에서도 위화감은 없다.
……그렇지만 위화감을 희생해서라도 좀 더 상냥한 인품인 편이었으면 한다.

「앨리스·마가트로이드 양.」

「네.」

「그럼, 클래스메이트를 적당하게 소개할게. 전원은 봐달라고.

 앨리스·마가트로이드. 공예부였었나.
 무엇을 해도 대부분 혼자지. 새침 때고 있어서(원문은 '츤츤거리고 있어서') 어울리기 좀 힘들어.
 본인도 신경써주지 않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라서 말이지.
 뭐랄까, 접촉하지 않는 것이 반에서의 암묵적인 룰 같은 느낌이 되고 있어.
 덧붙여서 앨리스만이 아니라, 우리 학교는 해외에서 온 학생이나 선생이 꽤 있다고.
 어쨌든 사립이니까. 다방면에 걸쳐 장사하자는 게 학교 방침이겠지.」

앨리스는 여기에서도 혼자인가 보네.

「이자요이 사쿠야 양.」

「네.」

「이자요이 사쿠야. 동아리는 무소속.

 품행 방정, 성적 우수. THE·우등생이다. 우리 반의 반장이기도 하지.
 아무래도 방과 후에 어딘가의 저택에서 메이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이 학교는 아르바이트 OK니까.
 기본적으로는 좋은 녀석이지만, 딱 하나 주의 사항이 있어.
 사쿠야는 극도의 죠죠 오타쿠다. 함부로 죠죠 이야기를 하게 되면 3시간은 가볍게 묶여버리니까 조심해.
 무심코  『최고로 하이한 기분이닷!』이라든가, 『나는 인간을 그만두겠다!』라든가 말하지 않도록.」

보통, 무심코 말하지 않으니까.

「이나바 레이센 양.」

「네.」

「레이센 우동게인·이나바가 아냐…….」

「어디 나라 사람이냐, 그건?

 이나바 레이센. 동아리는 생물부.
 모든 면에 있어 보통. 그러한 점에서는 교제하기 쉽고, 좋은 녀석이야.
 단지 하나 이상한 점이 있어서 말이지───」

「잠깐, 귀!! 토끼 귀가 자라나 있어!!」

「아아, 그거야. 왠지는 모르지만, 토끼귀 머리띠를 애용하고 있어. 역시 체육이라든가 할 때는 벗어두지만 말이야.」

(머, 머리띤가…….)

그것을 듣고 왠지 안심했다.

그 후, 마리사의 이름이 불리고, 내 이름도 불렸다.
과연, 이렇게 출석한 사람을 확인하고 있는 건가.
반 내에도 하나, 둘씩 알고 있는 얼굴이 있고, 역시 환상향의 인물상과 그다지 차이는 없는 것 같았다.
혹시 다른 반에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누구 하나 모르는 세계에 갑자기 던져지면, 분명히 패닉을 일으키고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이거라면 이쪽 세계를 즐길 정도의 여유는 있을 것이다.
평소와 다른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운 체험은 될 것이다.
모처럼의 귀중한 체험이다.
즐기도록 하자.





~1교시。역사~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1853년, 미국 해군 페리 제독이 일본의 우라가(浦賀)에 내항했습니다. 이 때, 일본은 쇄국중이라───」

내가 인생 처음으로 받는 수업은 역사였다.

일본사다.
담당 교사는………역시 본 적이 있는 얼굴.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선생님. 26살. 담당 교과는 역사. 고문은 역사 연구부.

 상냥해도 할 건 빈틈없이 하는 선생님으로, 학생들에게도 인기는 높지.
 수업도 꽤 알기 쉽기 때문에, 사적으로도 호감도 최고다.
 단지 화나게 하면 무섭다고. 머리에 뿔이 자란 듯한 착각조차 들 정도다.」

착각인가.

저쪽의 케이네는 리얼하게 뿔이 자란다고.
……화내지 않아도 자라나지만.

「그 때, 내항한 페리 제독은 말했습니다. 일본이 쇄국 상태였다고는. 이거, 오산이었습니다(いやぁ、誤算でした).」

「「헤에~」」

「…………물론 농담이다. 학생 제군. 일본인도 아니고 말이다.」

「「잠깐만요!!」」

「하지만 이렇게 기억하는 것이다. 서양 함선의 내항은 '이야-고산(1853)'년이라고.」
*'이거, 오산(いやぁ誤算)'과 1('い'ち) 8('や') 5('ご') 3('さん')의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암기법.

풋, 하고 교실에 웃음이 터졌다.

그렇군. 확실히 기억하기 쉽다.
인기가 높은 것도 납득이 간다.
뭐, 내가 일본사를 공부해 봤자 어떻게 될 것도 없지만.





~2교시。생물~ 야고코로 에이린





1교시 수업이 끝나자, 반의 모두가 우르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음, 무슨 일일까?

「어이쿠, 다음은 선택 이과였군.」

「선택 이과?」

「그래. 이과는 물리, 화학, 지학, 생물 네 과목으로 나눠져 있고, 저마다 받을 수업을 선택해.

 나는 화학이고, 너는 생물 전공이었지. 받는 수업이 다르니까, 각각 교실도 다르다고.」

헤에~…….

그래서 모두 우르르 교실을 나가는 건가.
…………그거, 큰일이지 않습니까?

「큰일이네, 응. 나랑 다른 교실이니까 도와줄 수 없고.」

「잠깐, 어떻게 하면 좋아! 교실이라든가 모르잖아!」

「그럼 레이센이랑 붙어서 가라고. 저 녀석도 생물 전공이었고. 야~ 레이센!」

쫑긋, 하고 귀가 뒤돌아보았다.

……귀가 아니라, 레이센이다.
아무래도 귀 쪽에 시선이 가 버린다.

「응~? 왜 그래, 마리사?」

「레이무를 교실까지 데리고 가줘.」

「상관없지만, 어째서?」

「…………?」

입 다물지 말라고.

그리고 이쪽 보지 마.
더 이상하잖아.

하지만 서투르게 기억상실이라든가 말해서, 이야기를 크게 하고 싶지 않은데.

「레이무, 컨디션이라도 안 좋은 거야? 오늘 아침에 드물게 지각하고 있었고.」

「그, 그래! 그거야! 레이무 녀석, 오늘 아침부터 열로 조금 머리가 이상해져서 말이야.

 가끔 뭘 잊거나 이상한 기행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좀 봐주라고.」

「그런 거야. 가끔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말아줘. 이런 식, 으롯!!」

—퍼억!!

끄억, 하고 폐에서 공기를 짜내고 신음하는 마리사.

찔러 넣은 수도(手刀)가 깨끗하게 늑골을 피해 옆구리에 박혔다.

누가 머리가 이상해져서, 기행을 한다고……?

더 나은 변명이 있었을 텐데.

「……완전 건강하잖아. 양호실에 갈 필요는 없는 거네?」

「없어, 없어. 완전 OK-.」

「그래. 그럼, 수업 시작되기 전에 가자.」

조금 고개를 갸웃하고는 있지만, 어떻게는 레이센을 설득한 것 같다.

위험해, 위험해.
이쪽 세계에서도 레이센은 잘 보살펴주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레, 레이무…….」

「어머, 마리사. 아직 살아 있었어?」

옆구리를 누르고, 웅크려 앉으며 마리사가 신음한다.

「야…….」

「야……?」

「양호실에서, 쉬고 있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그것도 그러네.



              * * *



「혈액 속의 적혈구는 산소를 가지고, 체내를 돌아다닙니다.
이렇게 해서 전신의 세포에 산소를 보내고 있습니다.」

담당 교사가 칠판에 붉은 분필로 적혀진 도넛을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그~런건가~…….

수업을 받는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나쁘지 않다.

「그래서, 레이센. 저 선생님은?」

「……레이무. 그 농담은 새롭지만, 야고코로 선생님에게 직접 말하면 해부 당할 거야?」

「그게, 열 때문에 머리가 잘 돌지 않거든. 좀 설명해 줘.」

열로 그렇게 되는 걸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설명해 주는 레이센.

사람 좋은 녀석. 그러니까 언제나 테위에게 속는 거야.

「야고코로 에이린 선생님. 자칭 영원의 25세. 담당 교과는 생물. 고문은 생물부.

 취미는 실험, 특기는 해부. 정말로 화나면 반대로 미소 짓는 무서운 선생님.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야고코로 선생님의 특제 연고를 바르면 5초 만에 고쳐진다나.」

「헤에~ 병원 필요 없네.」

「아니. 효과가 너무 좋아서, 무서우니까 모두 병원에 가.」

납득.

에이린도 이쪽 세계에서는 역시나 매드(mad)인 것 같다.

…………편견?

알까보냐. 어차피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주관의 세계니까.

「이나바 양, 제 수업 시간에 잡담이라니 좋은 담력이네요?」

「아, 아뇻!! 죄송합니다!!」

위험해라~ 주의 받았다.

우연히 앞자리에 앉아 있던 레이센이 노려봐진 듯하다.
나와 이야기할 때는 뒤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걸.
귀가 서 있으니, 그야 눈에 띄겠지.
미안.

「제 수업 시간에 잡담을 할 정도의 여유라면, 지금부터 제가 내는 문제에도 답할 수 있겠죠.」

능글능글 싫은 미소를 지으면서 지시봉을 휘두르는 에이린.

초 S의 눈이다.
도대체 어떤 난제를 내는 것인가, 알 수 없다.
살아서 돌아가라고, 레이센.

「거의 모든 동식물에 있어서, 유전 정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정식 명칭으로 답하세요.」

「네. 디옥시리보핵산입니다.」

…………지금, 레이센 뭐라고 했어?

지옥이시린산?

「…….」

「…….」

「………….」

「………….」

「건방지네!!」

「어째섯!?」





~3교시。가정과~ 사이교우지 유유코





「네~에, 여러분. 그럼 오늘은 조리 실습입니다.
오늘 메뉴는 야채 볶음과 무를 넣은 된장국.
 네 명이 한 조로 그룹을 만들어 주세요~.」

가정과인가.

아무래도 밥을 맛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인 것 같다.
필기 공부만이 아니구나.

「하아~…….」

「뭐야, 마리사? 우울한 것 같네?」

「그야 우울해질 만도 하지. 유유코 선생님이 가정과를 맡고 나서부터 조리 자습 밖에 한 적이 없다고?」

「그, 그렇구나…….」

그거, 괜찮은 걸까…….

유유코답다고 하면 유유코답지만.

「사이교우지 유유코 선생님. 27살. 담당 교과는 가정과. 고문은 검도부와 다도부를 겸임.

 나가고 싶을 때, 나가고 싶은 쪽을 나가는 것 같아. 덕분에 검도부는 반 방치 상태다.
 외관과는 다르게 위가 엄청나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먹는다고.
 이 근처 일대에 『다 먹으면 무료』 간판이 없는 것은 전부 저 사람 탓이야.」

그건 괜찮아. 익숙해져 있으니.

유유코가 대식가인 것도 저쪽 세계랑 같다.
저쪽은 인간이 아닌 만큼, 오히려 이쪽이 손쉬울 것이다.

「우선은 인원 확보다!」

개시와 함께 마리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빠르구나. 역시 육상부.
그러나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멤버에는 별로 구애받지 않는데…….

「기뻐해라, 레이무. 우리 군의 승리다.」

「납치됐어. 잘 부탁해.」

마리사가 데리고 온 것은 이자요이 사쿠야였다.

어째서 그렇게 가슴을 펴는 거야, 마리사?

「바보 녀석. 조리 실습에서 고득점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모르는구만?

 그건 감정(鑑定)도 솜씨도 재능도 아냐.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녀석과 조를 짜는 것이다.
 과정이나! 방법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거라고────옷!!」

지당한 의견이지만 찬동하기 어렵다.

왠지 지금 대사에 사쿠야가 움찔 반응했다.

「나머지 한 명은?」

「적당하게 레이센 정도로 괜찮으려나. 인원수가 부족한 것뿐이고.」

「「너무해!!」」



              * * *



「레이무는 야채 볶음. 마리사와 레이센은 된장국을 맡아줘. 나는 밥 지은 뒤에, 레이무를 도울 테니까.」

익숙해진 느낌으로 척척 지시를 내리는 사쿠야.

역시나 메이드장.
아니, 이쪽 세계에서는 반장이었나.

「마리사는 레이센의 지시에 따르도록 해. 전에 레이센이 만든 된장국은 굉장히 맛있었으니까 말이야.

 레이무, 야채 볶음은 볶는 순서에 신경 쓰도록 해.
 처음은 고기, 그 다음은 질긴 야채부터 차례로 넣는 거야.
 너무 볶으면 야채의 식감이 죽어버리니까 적당히 하도록 해. 마지막에 굴 소스를 쓰면 더 맛있어져.
 야채 볶음은 타이밍이 생명이니까 필요한 것은 전부 근처에 놔두도록 해.」

……굉장해.

정말로 과정이나 방법은 아무래도 좋아졌다.



              * * *



「좋아, 완성이다!」

「……응, 충분히 맛있네. 80점 정도려나. 이거라면 평가도 걱정 없겠네. 자, 제출하고 오자.」

과연 사쿠야 씨.

……핫! 무의식중에 '씨'를 붙여 버렸다.
그러나 마리사의 말은 정답이었다.
조리 실습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인재다.

「레이무는 야채 볶음과 밥을 담아 줄래? 나는 된장국 쪽을 볼 테니까.」

「라져.」

프라이팬 속의 야채 볶음을 부랴부랴 접시에 옮겨 담는다.

양은 어느 정도가 좋을까.
다른 조도 제출하니까, 너무 많은 것도 그렇겠지.

「……좋아. OK.」

「된장국 쪽도 다 됐네. 선생님, 완성했습니다!」

왠지 조리 실습을 하고 있는 학생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던 유유코는 사쿠야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어머. B조는 빠르네요. 역시나네요.」

나는 자신만만하게 완성된 야채 볶음을 제출했다.

생애 최고의 야채 볶음이 만들어 졌다고 자부하고 있다.
90점은 확실하겠지.
사쿠야의 80점은 조금 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 어때!

「레, 레이무……?」

「담은 거, 너였지?」

「…………바보.」

엇, 뭐야?

뭔가 잘못이라도 했나?

「너무 적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핫!!

상대는 그 사이교우지 유유코.
평범한 양으로 만족할 리 없다.
게다가 다른 조도 만드니까, 조금 더 줄인 양으로 담아 버렸다.
유유코에게 양으로 사양하는 것은 어리석기 그지없는 일!!
유유코는 입을 △로 만들고, 불만스러운 듯이 나와 야채 볶음을 번갈아 보고는

「…………20점.」

「「적어도 먹으라고!!」」





~4교시。국어~ 호라이산 카구야





「자, 빨리 자리에 앉으세요, 우민들.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작은 몸으로 쓸데없이 긴 기모노를 질질 끌며 들어온 교사.

다음 수업은 저 사람이 하는 것 같다.

「호라이산 카구야 선생님. 13살. 담당 교과는 국어. 고문은 아무 것도 안 해.

 10살에 초등, 중학을 월반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모 대학에 입학.
 그 대학도 2년 만에 졸업하고 온 터무니없는 선생님이다.
 엘리트 가도를 스킵(skip)은 커녕 멀리뛰기로 진행해 온 듯한 사람이야.
 별명은 테루요지만, 그렇게 부르면 화내. 하지만 모두들 부르지.」

뭣이라!?

설마 카구야, 이곳에서는 굉장한 사람인 건가!?
그보다 취직을 하고 있다는 시점에서 이미 놀랍다.

「오늘은 다케토리 설화네. 읽겠어요~?

 에~ 크흠.
 옛날, 대나무를 캐는…….」

「…….」

「…….」

「………….」

「…………대나무를 캐는.」

「……………….」

「………………대나무를 캐는 노?」

「「노옹(翁).」」

「노옹이 있었단다. 산과 들에 섞여───」

*대나무를 캐는 노옹 : 원문은 '竹取の翁(타케토리노오키나)'.

………….

설마, 읽을 수 없었던 걸까?
학생들의 도움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계속 읽어나가는 카구야 선생님.
앗, 또 막혔다.

「……굉장하지~ 돈의 힘은.」

「전부 돈이냣!!」

아아, 응.

카구야도 별로 위화감은 없는 것 같다.

「뭐야~ 그 질척질척 더러워진 진흙(ヘドロ:개흙. 공장 폐수나 산업 폐기물 등의 오염 물질이 섞인 진흙)처럼 부패한 정치가를 규탄하는 듯한 시선은!!
바보 취급하지 마! 선생님이라고!!」

아아, 예이 예이.





~점심시간~ 앨리스·마가트로이드





딩~동~댕~도~~~옹...

「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앗, 이 녀석!! 기다리세요, 키리사메 마리사!!」

카구야가 수업 종료를 선언하자, 마리사는 쏜살같이 교실을 뛰쳐나갔다.

왜 저렇게 서두르는 걸까.
화장실인가?

「오늘은 어느 쪽이 이기려나?」

「또 마리사의 패배겠지~」

반 아이들이 웅성거리면서 우르르, 복도에 얼굴을 내민다.

대체 무슨 소란이지?
나도 똑같이 얼굴을 내밀어 보면, 복도를 전력질주 하고 있는 마리사의 등이 보였다.
과연 육상부. 빠르다. 빨라.
아무래도 B반과 C반 사이에 있는 매점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눈 깜짝할 순간에 매점에 도착한 마리사는 입을 열자마자 이렇게 외쳤다.

「코우린!! 나비 빵이다!!」

「품절됐어. 유감이네.」

「그럴수가아아아아아아!!!」

풀썩, 무너지는 마리사.
종이 울리고 나서 최고 속도로 달려들었는데 품절이라니…….

「쿡쿡쿡. 오늘도 늦었네요, 마리사 씨.」

그 뒤에서 겁 없이 웃는 한 명의 여학생.

「이걸로 마리사 씨의 전적은 47승 200패가 되었어요.

 이런, 기념해야 할 200패째네요. 반드시 교내 신문의 일면으로 하도록 하죠.」

「큭, 이 자식───!!!」

……뭐야, 저건.

아무래도 마리사는 패배한 것 같다.

「……오늘도 마리사의 패배였네.」

내 머리 위에서 금발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었다.

「있지, 앨리스. 저거, 뭐야?」

「뭐냐니, 매일 하고 있잖아. 매점 빵의 쟁탈.」

「저 두 사람이?」

「샤메이마루 아야. 2학년 A반. 동아리는 신문부.

 동방 학원 최속의 다리를 가진, 마리사의 천적이지.
 육상부 고문인 불사 선생님의 열렬한 러브 콜을 계속 거절하고 있을 정도로, 저널리즘에 생명을 걸고 있는 모양이야.」

그렇군.

이렇게 교실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애들은 매일 치르는 2명의 레이스를 기대하고 있는 관객들이라는 건가.

「나비 빵이라는 건?」

「정확히 12시 30분부터 매점에서 판매되는, 하루 한 개 한정의 굉장한 레어 크림빵이야.

 그걸 획득하기 위해서, 마리사는 언제나 저렇게 경쟁하고 있고.」

「……판매 개수를 늘리면 될 텐데.」

「그렇게 하면 맛이 없어지나 봐.」

「엄청 맛있는 걸까?」

「승리의 맛이 나나봐.」

그렇군.

그건 늘리면 맛이 없어지겠네.

「그렇지만 마리사도 일단 47승은 하고 있네. 다음에 사게 되면 한 입 달라고 해야지.」

「다음에 이긴다고 하면 모레겠네.」

「……어째서?」

「A반의 수요일 4교시는 이동 교실이라 옆 건물로 가야하니까.」

…그러고 보니 승률은 거의 4 : 1.

학교는 주 5일이니까, 혹시 마리사는 핸디캡이 첨부된 수요일 밖에 이기지 못하는 건가?
실질적으로 마리사의 전패잖아.

「그런데, 마리사의 친구인 네가 모를 리 없잖아. 어째서 내가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아니, 노려봐도…….

설명하는 게 그렇게 귀찮은가.

「잠깐 지나갈게요.」

—두웅

하고, 갑자기 시야가 막혔다.

화면 가득히 거대한 보자기가 보이고 있다.

「우왓, 뭐뭐뭐뭐야 이거!?」

거대한 보자기가 공중에 떠서, 복도를 활보하고 있다.

복도에 빠듯하게 들어가는 사이즈로, 무거운 듯이 쿵쿵 나아간다.
내가 빠진 턱을 고쳐 끼우고 있으면, 보자기의 반대편에서 작은 머리가 불쑥 자라났다.

……아니, 틀린가.

보자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돼 버릴 정도로 몸집이 작은 여학생이 그 거대한 보자기를 껴안은 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보자기가 너무 커서, 그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아, 레이무 선배랑 앨리스 선배. 안녕하세요.」

「수고하네. 매일 큰일이구나.」

「아뇨. 이것도 단련이에요.」

쏙, 하고 작은 머리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고, 보자기는 전진을 재개했다.

복도에 있는 학생들을 밀어내면서 나아가는 모양은 마치 볼링.

「……뭐야, 저거?」

「콘파쿠 요우무. 1학년 D반. 검도부.

 동방 학원 검도부의 기대주야. 1학년이면서 에이스인 슈퍼 루키.
 저렇게 점심시간에 고문인 유유코 선생님께 점심 식사를 가져가는 게 일과.
 마리사와 함께 우리 학교 낮의 명물이네.」

「……3교시, 조리 실습이었지?」

「그렇네.」

「……유유코 선생님. 모든 조가 만든 거, 먹지 않았었나?」

「그러네. 덧붙여서 4교시는 C반이 조리 실습이었던 거 같아.」

…………물어보는 게 아녔다.

내가 지쳐서, 진절머리를 내고 있으면, 각 반의 학생들도 교실로 우르르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의 상연물은 이것으로 끝인 것 같다.
나도 매점에서 뭔가 사오도록 하자.



              * * *



나는 매점에서 구입한 가다랑어포 주먹밥의 포장을 벗겨내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운동장에서는 초등부인 듯한 아이들이 왁자지껄 축구를 즐기고 있었다.

바보 같은 여자 아이가 찬 공이 아군일 터인 여자 아이의 뒤통수를 치고,
공에 부딪힌 여자 아이는 「그~런건가~!?」라며, 빙글빙글 돌면서 코트 밖으로 튕겨나가고 있었다.
평화롭네.

「그런데, 물어봐도 괜찮을까?」

내 정면에 앉아 있는 앨리스가, 도시락을 찌르며 내게 물었다.

「괜찮아.」

앨리스는 시간을 들이듯, 문어 모양의 비엔나소시지를 하나 입에 던져 넣고,

『Alice Chan Love♪』이라 그려진 부끄러운 김도시락(海苔弁:밥 위에 김을 얹혀 놓은 도시락)을 다시 한 입 먹는다.

「어째서 네가, 어째서 내 눈앞에서, 어째서 가다랑어포 주먹밥을 개봉하고 있는 거야?」

「뜯지 않으면 먹을 수 없잖아.」

「그게 아니라.」

「참치 와사비랑 어느 걸로 할 지 고민했지만, 정통적으로 해봤어.」

「그것도 아니고.」

「오오, 굉장해─!! 김이 바삭바삭!! 이걸 생각한 녀석은 천재야!! 내 권한으로 노벨평화상을 주마!!」

앨리스가 이마를 누르고, 성대하게 한숨을 내뱉는다.

물론 일부러다.

「그치만, 응. 혼자서 먹으면 외롭잖아.」

「나, 나는 외롭거나 하지 않아!!」

「응? 아아, 아니, 내 얘기였는데.」

힘차게 소리를 내며 의자에서 일어선 앨리스를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무엇을 필사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걸까.
완벽하게 반의 주목을 끌어버린 앨리스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별로, 네가 외롭다고 해도 내가 알 바 아니야.」

「앨리스가 외롭지 않다고 해도 내가 알 바 아니네.」

「…………싫은 녀석.」

「쑥스럽네.」

종이 팩 딸기 우유에 빨대를 찔러 넣는다.

달아.
…………주먹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큭, 그 때 차로 샀더라면.

서로 묵묵히 식사를 한다.

그러고 보니, 저쪽의 앨리스는 인형 마니아였다.
이쪽의 앨리스도 그런 걸까.

「옷, 역시 있었어.」

책상 옆에 걸린 앨리스의 가방에 작은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뭐야. 가방에 인형 달면 안 돼?」

「아냐. 오히려 안심했어.」

「……뭐~?」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의 앨리스를 무시하고, 나는 인형을 손에 들어 보았다.

「오, 상하이다. 이쪽은 오를레앙이었었나.」

과연.

이런 점에서도 공통점.

「…………잘도 알았네?」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는 앨리스.

「그래. 그쪽이 상하이 제(製)의 인형이고, 이쪽이 오를레앙에서 만들어진 인형.

 너, 의외로 인형에 대해 잘 알고 있네?」

「엇!? 아, 아, 아니, 뭐, 남들만큼은.」

탄막으로 기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보냐!!

「흐응. 조금 의외네.」

「아, 아니, 저도 소녀 나부랭이니까요!」

「……………쿡.」

웃었다.

아니, 나라도 같은 일을 당하면 웃겠지만.

「있지.」

앨리스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상하이 인형을 가방에서 때어내, 책상 위에 두었다.

「이 아이, 줄게.」

「어?」

내민 인형은, 틀림없이 그 상하이 인형.

아마, 저쪽의 앨리스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괜찮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아냐?」

「어, 어째서 알ㄱ……!? 벼, 벼벼벼벼별로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아니야!!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면 너 같은 애한테 줄 리 없잖아!?」

과연, 당연한 말이다.
여기서는 사양하지 말고 받아 두자.
머지않아 레이저를 발사해 주는 걸까.

「아니, 그 전에 먼저 차 시중이려나.」

「차 시중? 이 아이가?」

앨리스가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다.

……큰일 났다.
저쪽의 상하이는 앨리스가 마법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마법이 없는 이쪽 세계에서는 차 시중 같은 건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레이저는 논외.
이래서야 내가 완전 이상한 애가 아닌가.

「이 아이에게는 차 시중 인형 같은 기믹(gimmick)은 안 들어 있는데…….」

그렇지요~…….

「……하지만, 그렇네. 그 생각은 멋진 걸. 소중하게 사용하면, 언젠가 차 정도는 내줄지도 모르겠네.」

얼간이 같은 말을 한 나를, 앨리스는 바보 취급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어쩐지 기쁜 듯한 표정으로 날 보는 것이었다.





~5교시。체육~ 후지와라 모코우





푸른 하늘.

하얀 운동장.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의 마라톤 지옥…….」

5교시는 체육.

내용은 설마 했던 마라톤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한 여름인 걸…….

「저 선생님은 좀 비상식적이야.」

「뭐, 그 불사(不死原) 선생님이고…….

 후지와라 모코우 선생님. 26살. 담당 교과는 체육. 고문은 육상부.
 한마디로 말하면 열혈 선생님. 별명은 죽지 않는다고 써서 불사 선생님.
 마라톤 대회에서 5킬로미터를 전력 질주로 계속 달렸다고 하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지금도 매일 아침, 탈 것을 쓰지 않고 달려서 학교에 오고 있나봐.」
*不死原(ふし(じ)わら) : 모코우의 성인 '藤原(ふじわら)'과 발음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말장난.

겍, 그게 인간이냐?

이쪽에서도 체력 바보인 건가.
그건 좋지만 말려 들어가는 건 사양한다.
이 땡볕 속 마라톤이라든가.
분명히 쓰러지는 사람이라든가 나올 테고…….
그렇다고 할까, 쓰러질 것 같고.

「더, 더버…….」

「음, 덥냐─?」

「더운 게 당연하잖아!! 오히려 뜨거워!!」

「빠르게 달리면 맞바람 때문에 시원해질 텐데?」

「「될 리가 없잖아!!」」

「너희들─ 쓰러지면 야고코로 선생님께 데려다 줄 테니까 안심하고 쓰러져도 좋아─.」

「「바보냐─!!」」





~6교시。수학~ 오노즈카 코마치





「주, 죽는 줄 알았어…….」

「그러게. 살아 있다는 건 훌륭한 거라고.」

「이제 무리. 6교시를 보낼 체력이 없어.」

「걱정하지 마. 다음은 수학이라고.」

—드르륵

종이 울리기 전에, 교실 앞문이 열렸다.

담당 교사가 들어온 것 같다.

「오노즈카 코마치 선생님. 28세. 담당 교과는 수학. 고문은 없음.

 케이네 선생님과는 다른 의미로 학생에게서 절대적인 인기를 받는 선생님이야.
 나도 코맛짱의 수업은 정말 좋아한다고. 어느 의미로는 케이네 선생님 이상으로 말이지.」

마리사가 격찬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선생님인가, 코마치.
저쪽과는 크게 다를지도 모르겠다.

딩~동~댕~도~~~옹.

종이 울렸다.

종이 울리기 전에 와 있을 줄이야. 의외로 성실하네.
……아니, 그게 보통이겠지만.

「출석 부르마~ 오늘 당번은?」

「네, 접니다.」

「좋아, 이자요이. 잘 부탁해.」

톡, 하고 사쿠야에게 출석부를 건넸다.

사쿠야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출석부를 펴, 학생들의 이름을 순서대로 읽어 내려간다.
코마치는 옆에 있는 파이프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을 뿐.

「……이 수업은 학생이 출석을 부르는 거야?」

「그런 거야. 저게 코마치 선생님의 스타일이니까.」

헤에. 뭐 좋아.
그런 거겠지.
아무도 거기에 대해 불만을 품는 것 같지 않고.
출석을 다 부르면, 코마치는 출석부와 교환하듯이 프린트 다발을 건네주었다.
건네받은 사쿠야가 그것을 가장 앞자리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한 장씩 한 장씩 뒤로 전달한다.
과연, 저렇게 하면 전원에게 효율적으로 프린트를 나눠 줄 수 있는 건가.
그런데 뭐지, 이 프린트.
이름란과 문제가───

「그렇지. 오늘은 테스트 날이었어.」

「뭐라굽쇼!?」

어제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는 나에게 갑자기 테스트입니까!?

느닷없이 실전인가요!?
그건 너무나도 무리, 무모, 억지라는 것이다.

「전원 받았겠지? 시간은 6교시 끝날 때까지. 어서 시작해!!」

우와, 진짜다.
진짜로 테스트다.
게다가 모두 묵묵히 테스트 용지를 보고 있다.
대체 뭐야. 이 학생들의 넘칠 듯한 성실함은.
코마치는 파이프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테스트가 끝나기를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다.

우와, 진짜냐고, 모두!?

뭐야, 이거!?

일단 1번 문제를 읽어 본다.
뭐야, 이건!?
+라든가 x라든가는 알지만,
뭐지, 이건!? 본 적도 없다고!?
8의 위에 라든가 하는 이상한 형태의 기호가 붙어 있어!?
뭐냐고, 이건!? 지붕!? 지붕이냐!?
그런 곳에 비 같은 건 안 내린다고!!

내가 악전고투하기를 약 5분…….

「슬슬 이네.」

갑작스럽게 사쿠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테스트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도 괜찮습니까?
파이프 의자에 앉아 있는 코마치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탁!!

갑자기 촙(chop)을 먹였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저 사람은!?
아무리 시험이 이해 안 된다고 해서 폭력은 안 돼, 절대로!!
그런데 코마치는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좋아. 완전히 자고 있네.

 언제나처럼, 창가 줄부터 순서대로 문제를 3개씩 풀도록 해.
 종료 15분 전에 줄끼리, 10분 전이 되면 전원이 답을 맞추도록 할게.
 모르면 근처나 다른 줄 사람에게 물어보도록. 이상, 미션 스타트!!」

엇?

엇!?

뭐야!?

「응, 언제나의 일이라고.

 코맛짱의 수업은 자습이거나 테스트이거나 둘 중 선택이야.
 어느 쪽도 시작하자마자 바로 졸고, 종료 직후에 눈을 뜨기 때문에 그때까진 거의 자유지.
 테스트는 전원이 답을 맞춰보고 나서 내니까, 거의 100점이야.」

「그, 그걸로 괜찮은 거야!?」

「바보 자식!!」

마리사는 주먹을 꽉 잡으며 일갈했다.

「어려운 시험 문제에 반 전원이 맞서는 것으로 단결력을.

 교사는 개입하지 않고, 학생들 스스로에게 공부를 시키는 것으로 자주성을.
 그런 코마치 선생님의 훌륭한 이념을 넌 이해할 수 없는 거냐!?」

「…………아~ 응. 이해했어. 최고네. 코마치 선생님~ 야~~호~~…….」





~하교~ 키리사메 마리사





하루 수업이 끝났다.

지금은 마리사와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다.

「마리사, 동아리는?」

「오늘은 땡땡이야.」

「괜찮아?」

「너 혼자서 돌아갈 수 있는 거야?」

「동아리 같은 건 땡땡이 쳐버려!!」

「너도 뭔가 동아리 활동 하면 좋을 텐데 말이다.

 생각보다는 즐겁다고. 싫은 일이 있어도 잊을 수 있고 말이지.」

「동아리는 어떤 게 있는 거야?」

「우선 운동계라면 불사 선생님의 육상부겠지. 유유코 선생님의 검도부.

 중국……아— 메이린 선생님의 탁구부. 그 밖에도 소프트볼이나 테니스부가 있다고.
 문과계라면 대표적으로 만화 연구부, 미스터리 연구부, 오컬트 연구부, 이 3개가 있고,
 아야가 활동하고 있는 신문부는 어느 의미로 운동계려나?

 역사 연구부, 생물부, 그리고 유카 선생님의 원예부도 있었지.」

「그만둘래. 귀가부와 함께 하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까.」

하하하, 하고 마리사는 경쾌하게 웃는다.

나도 거기에 맞춰 웃었다.

굉장한 하루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즐거웠다.

「그래서, 어때?」

「뭐가?」

「뭔가 기억해낼 수 있었어?」

……기억났다.

으응, 아니.
이쪽 세계의 기억 같은 게 아니라, 내가 기억상실이라고 말해뒀던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실제로는 기억상실 같은 게 아니니까.
나는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다.

「………….」

「왜 그래?」

마리사에게는 이야기해 둘까.

사실을.

마리사는 신뢰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뢰에 거짓으로 답하는 것은 ……괴롭다.

「있지, 마리사.」

「응.」

「지금부터 엄청 착실한 이야기를 할게. 진지하게 들어줬으면 해.」

마리사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바로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나, 이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야. 네가 알고 있는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냐.」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로의 의미.

 이쪽이 내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인지, 내가 있던 세계와 거의 닮은 다른 패러럴 월드인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어.
 사실 기억상실이라서 어제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늘 갑자기 이쪽 세계에 내던져져서, 이쪽 세계의 기억이 없을 뿐이야.」

마리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테지.
나 역시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닐까 의심할 것이다.

「…………역시, 믿을 수 없겠지.」

「………….」

마리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곰곰이, 신중하게 말을 선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 네가 농담이나 재미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건 믿어.」

「어?」

의외였다.

마리사는 시원스럽게 나를 믿어 주었다.

「네 얼굴을 보면,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도 없어.

 기억이 없다는 것도 연극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고,
 
머리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기억상실 쪽이 진짜라는 것도 납득할 수 있어.」

뭐야.

이럴 거라면 마리사에게 빨리 사실을 얘기해 두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분명히, 좀 더 마음 편하게 학교생활을 즐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너,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하쿠레이 레이무』인 거냐?」

「…………무슨 의미야?」

「행동 패턴이라든지, 버릇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너무 닮았어.

 자라 온 환경이 다르다면, 그런 것에는 차이가 나타날 거잖아?
 나에게는 네가 내가 알고 있는 어제까지의 『하쿠레에 레이무』로 밖에 생각되지 않아.」

「역시, 믿지 않잖아!?」

「나도 진지하게 이야기할 테니까, 너도 진지하게 들으라고.

 그게 아냐. 나는 네가 진지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네가 믿고 있는 진실이 사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네가 다른 세계에서 온 레이무라는 것은 분명히 틀림없는 거야?
 너는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해 줄 수 있어?」

「그렇지만 어제까지 저쪽 세계에서 지낸 기억이 있다고!!」

「그 정도야? 그것 말고 뭔가 결정적인 것은 없어?」

나는 기억하고 있다.

환상향에서 지내온 지금까지의 일을.
신사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기분이 내키면 요괴 퇴치에 나섰다.
홍마관에 쳐들어가 레밀리아 네와도 싸웠다.
봄을 되찾기 위해서 영계에서 유유코 네와 싸웠다.
영원정에서 카쿠야 일행과 싸우고, 진짜 달을 되찾았다.
삼도를 건너 코마치나 에이키와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한 거야?

「이건 내 추론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너, 실은 정말로 기억상실이 아닌 게 아냐?」

그렇지 않다.

절대로 아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 저쪽 세계에서 지내온 추억이,

「어젯밤부터 오늘 아침 사이에 기억을 잃어버리고,

 오늘 아침께 우연히 꾸고 있던 그 세계의 꿈과 현실의 세계를 뒤죽박죽 섞어버렸을 가능성은?」

꿈과 현실을, 뒤죽박죽?

「가끔 있잖아. 잠에서 깨어나고 나서도 당분간 꿈과 현실이 구별되지 않는 거.

 텅 비어버린 너의 기억에 우연히 그 꿈의 내용이 쏙 들어앉은 게 아냐?
 너는 그것을 진실이라고, 진심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야?」

환상향이, 꿈?

나의, 착각?

「너, 최근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아버지도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돌연 타인이었던 유카리 씨의 양자가 됐잖아?
 최근 너,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어.
 창밖 경치를 멍하니 보고 있는 경우도 많았고, 자주 생각에 빠지는 것 같았고.
 유카리 씨와 너의 문제니까 외부인인 내가 말참견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있었지만, 사실은 후회하고 있어.
 제대로 상담에 응해줬으면 좋았을 걸.」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쇼크 상태였기 때문에 정신적인 부담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는 자주 몽상하고 있었다.
다른 세계의 나. 다른 세계의 모두.
그리고 이쪽 세계의 일 같은 건 전부 잊어버리고 싶다고…….

그런, 그런 건…….

정말로 아닌 건가?

정말로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나?

그것도 그럴게,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증거도, 내가 환상향에서 왔다는 증거도 아무 것도 없다.

유일하게 있는 기억조차, 마리사가 말한 것처럼 내가 믿고 있을 뿐인 것이라고 하면…….

「단순한 가설이야. 그것이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어.

 사실은 당사자인 너 밖에 모르고, 너밖에 결정할 수 없어.
 정말로 네가 다른 세계에서 온 『하쿠레이 레이무』인지,
 내가 잘 알고 있는 지긋지긋한 관계인 『하쿠레이 레이무』인지.
 어느 쪽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있게 되면, 그 땐 한 번 더 나에게 상담해 줘.
 네가 다른 세계에서 온 『하쿠레이 레이무』라면,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할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도서관에 다니는 것 정도지만, 협력을 아끼지 않을게.
 하지만 만약 네가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라면, 나는 너를 현실로 데려오지 않으면 안 돼.
 네가 그렇게 된 원인의 일부는 나에게도 있으니까 말이야.」

나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정말로 환상향에서 온 『하쿠레이 레이무』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인가.

확실히 기억은 있다.

지금까지 환상향에서 지내 왔던 기억이.
그렇지만, 그것이 정말로 현실의 기억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쪽 세계에서는 나는 것조차 할 수 없으니까.





~과외 수업~ 야쿠모 유카리





저녁 식사도 다 먹고, 각자 빈둥거리며 보내는 시간대.

란은 첸을 껴안고, 텔레비전 드라마를 지켜보고 있다.
유카리는 테이블 위의 식기를 정리하고 있고, 이제 슬슬 하루가 끝나려 하고 있다.
단순한 꿈으로서는 너무 긴 것 같았다.
벌써 깨어났어도 되는데.
나는 아직 어느 쪽의 세계가 현실인지 판단을 하지 못한 채, 그저 어중간하게 시간을 낭비하고만 있다.

「어떠니? 맛은 있었니?」

유카리가 기분 좋은 듯,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밥알 하나 남지 않은 그릇을 정리하였다.

맛있었다.

그래, 맛있었던 것이다.
꿈속에 미각 같은 게 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것도 답할 수 없었다.

「……란, 목욕하고 오렴.」

「엇, 그렇지만 지금 드라마가…….」

「됐으니까.」

란은 나와 유카리를 교대로 보고 나서, 얌전히 텔레비전의 전원을 껐다.

「좋~아, 첸. 목욕하러 가자꾸나~♪」

첸을 껴안은 채로 일어서, 콧노래를 부르며 욕실로 향한다.

싫은 기색을 감지했는지 첸이 품속에서 날뛰었지만, 저항도 소용없이 첸은 란에게 잡혀갔다.

「차라도 마실까.」

유카리는 뜨거운 차를 2인분 태워, 내 정면에 앉았다.

후후~ 하고 차를 한 모금.

「자, 레이무. 내게 무언가 상담하고 싶은 것이 있지 않니?」

「…………독심술?」

「마음을 읽는 것보다도 얼굴에 쓰여 있는 것을 읽는 편이 훨씬 편하단다.」

유카리에게는 빤히 보이는 것 같다.

아니, 솔직히 유카리에게 상담해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던 단계였지만.
뭐, 좋아.
유카리가 란에게 드라마를 중단시켜서까지 목욕하라 했던 것도, 아마 이 때문에 자리를 만들어 준 것일 테니까.
나는 전부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나,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냐.」

유카리는 순간 눈이 동그래졌지만, 곧바로 그 표정을 억제했다.

입 다물고 다음 말을 재촉한다.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고, 나는 그쪽의 하쿠레이 레이무야.

 이쪽이 내 꿈인지, 비슷한 패러럴 월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세계에서 왔어.
 그러니까, 나는 이쪽의 어제까지의 기억이 전혀 없고, 반대로 지금까지 저쪽에서 지내온 기억이 있어.」

「…………저쪽의 세계, 라는 건?」

「차라든가 텔레비전 같은 건 없지만, 대신 마법이 있고, 요괴 같은 것도 많이 있어.

 나는 신사에서 무녀를 하고 있고, 여기저기 날아다니면서 요괴 퇴치를 하고 있었어.」

「마법, 말이구나. 마치 동화 속 나라네.」

동화 속 나라, 라고 유카리는 중얼거렸다.

그래, 이쪽 세계에서 보면 마치 꿈의 나라.

실제로는 좋은 일만은 아니지만, 그런데도 이쪽에서는 동경의 대상.

「사람도 말이지. 마리사라든가 레이센이라든가 알고 있는 얼굴이 있어.

 마리사는 마법사고, 레이센은 달에서 온 토끼고」

「나도 있었니?」

「응, 있었어.」

「그래. 후훗, 다행이네.」

어떤 인물상이었는지, 여기선 덮어 두자.

그다지 본인을 앞에 두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이쪽 세계의 하쿠레이 레이무와 바뀌어 버렸어.」

「……그래.」

유카리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고 보니 나도 목이 마르다.
나도 한 모금만 차를 마셨다.

「그럼, 넌 어제까지 이곳에 있던 레이무와는 다른 사람인거니?」

「응, 아마도.」

「……아마도?」

「이런 이야기, 믿을 수 없겠지? 나도 잘 알 수 없게 돼 버렸는걸.」

「어째서?」

「마리사에게 상담했더니 말이야. 그건 내 착각이 아니냐고 했어.

 사실 나는 기억상실이고, 오늘 아침 우연히 꾸고 있던 꿈과 현실이 뒤죽박죽 섞여버린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
 기억상실에 걸렸던 것도 여러 가지 정신적인 피로가 겹쳤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넌 어떻게 생각하니?」

「모르겠어. 유일하게 있는 이 기억이 잘못되어 있는 거라면, 나에겐 증명할 방법이 없어.

 이쪽 세계에서는 하늘조차 날 수 없는 걸.」

저쪽 세계의 나와 이쪽 세계의 나.

차이는 그 정도밖에 없다.
그것조차 거짓이라고 하면, 저쪽과 이쪽의 나를 구별하는 것은 할 수 있을 리 없다.
내가 현실과 꿈을 구별할 수 없는, 지나친 망상 소녀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나도 이제와서 그 가능성 쪽이 높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믿을 수 없지. 이런 이야기.」

「그렇지 않아.」

유카리는 강한 어조로 분명하게 즉답했다.

「내 이야기, 믿을 수 있는 거야……?」

「물론이란다. 넌 내 딸인 걸.」

나는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나는 아직 환상향을 믿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상담에 응해 준 마리사나, 나를 딸이라고 말해주는 유카리를 부정하는 것일까?

「나비의 꿈.」

「나비의, 꿈?」

「그래.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어.
 잠에서 깨어나, 장자는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지만
 과연 그것은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하는 그런 이야기란다.」

과연.

지금의 내 상황과 닮았다.

환상향의 내가 이쪽 세계의 나를 꿈에서 보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이쪽의 내가 환상향의 나를 꿈에서 보고 있었던 것인가.

「어느 쪽이 현실인지는 너 밖에 알 수 없단다. 아니, 너도 알 수 없을 테지.」

「……응.」

「그럼, 넌 어느 쪽의 세계가 좋니? 어느 쪽의 세계를 선택할 거니?
진실을 모른다면, 네가 바라는 쪽을 선택하렴.」

내가 바라는 쪽?

나는 어느 쪽을 바라는 거야?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이쪽에는 괴로운 일이 많이 있다.
내 맘대로 살아 온 저쪽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이쪽 밖에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학교.
예를 들면, 가족.
게다가 저쪽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보장 같은 건 어디에도 없다.

「만약 네가 이쪽 세계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레이무라면 그 책임은 나에게도 있어.

 너에게 있어서 이곳이 괴롭다면, 내가 널 지켜줄게.
 그리고 언젠가 네가 이곳을 돌아볼 수 있게 해줄 거야.
 어느 쪽을 선택한다고 해도, 나는 언제나 너의 편이란다.
 그러니까 정말로 네가 바라는 쪽을 선택하렴.」

저쪽 세계를 선택한다면, 나는 저쪽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히 착실한 생활은 보낼 수 없다.
환상향을 그리워하면서, 이 세계를 부정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유카리는 나를 지켜준다고 한다.

이쪽 세계를 선택한다면, 나는 저쪽 세계를 단념하는 것이다.

마리사나 다른 애들과 학교에 다니며,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겠지.
그렇게 되면 언제까지나 환상의 세계에 잠겨 있을 수는 없게 된다.
그것은 내 안에서 환상향이 소멸하는 것.

「어, 엄, 마………….」

무심코 입을 통해 나온 말.

유카리는 정말로 기쁜 듯이 흐뭇해하였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하는 거니?
우리들이 살아 있는 이쪽의 세계와 네 안에 있는 『환상향』이라는 세계 중에서.」

…………나는, 깨달았다.

어느 쪽의 세계가 현실인지.

어느 쪽의 세계가 꿈인지.

그래. 깨달았던 것이다.

깨닫고, 생각했다.

현실 세계에서 살고 싶은 것인지.

꿈의 세계에서 살고 싶은 것인지.

어느 쪽의 세계도 내가 그 쪽을 선택만 하면 현실이 될 수 있다.

어느 쪽의 세계도 현실 못지않은 리얼함.
그러니까 그것이 꿈이든, 현실이든,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과 다름없다.
내가 그렇게 믿으면,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현실이 된다.

「결정했어. 나는 현실을 살 거야.

 현실인, 저쪽 세계를.」

그래, 나는 환상향을 선택했다.

유카리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그래. 네가 그렇게 선택한 거라면, 나는 말리지 않아.

 하지만 현실은 정말로 네가 말하는 저쪽 세계인 거니?」

「응, 틀림없어. 유카리, 너한테 상담한 게 정답이었네. 덕분에 저쪽이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어.」

「……어째서일까. 이유를 물어봐도 괜찮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어.

 마리사도 레이센도 사쿠야도, 모두 저쪽 세계의 인물상과 거의 같은 걸.
 마리사는 가장 친한 친구, 레이센은 토끼귀, 사쿠야는 메이드, 에이키는 규칙에 충실,
 케이네는 역사를 가르치고 있었고, 에이린은 매드, 유유코는 대식가, 요우무는 유유코의 심부름꾼이고,
 카구야는 구제불능 인간, 앨리스는 역시나 혼자, 아야는 신문 쓰고 있고,
 모코우는 체력 바보, 코마치는 땡땡이 상습범, 란은 착실하고 첸에게 찰싹 붙어 있어. 그리고 첸은 고양이.」

단숨에 단언했다.

다소 편견이 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내 꿈이다.
주관 덩어리인 것은 당연.

「그래, 너뿐이야. 인물상으로 내 예상을 완전하게 배반해 준 건.

 마치 내가 짠 배역에 무리하게 끼어들어 온 것 같아.
 그런 거겠지? 틈새 요괴 야쿠모 유카리!」

유카리는 곤란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너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저쪽 세계의 내가 이쪽의 나와 다른 건 아니니?」

「…………누구와 누가 다르다는 거야?」

「네가 말하는 환상향의 야쿠모 유카리와 이쪽 세계의 야쿠모 유카리가 말이야.」

나는 찻잔을 기울였다.

아아, 역시 그렇구나.
이쪽이 꿈이고, 환상향이 현실.

「두 번째야, 유카리.」

「…………?」

「네가 그 명칭을 말한 건 두 번째라고.」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는 유카리.

언제까지 계속 연극할 생각이야.

「『환상향』. 난 이 명칭을 네 앞에서 아니, 이쪽에 오고 나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어.

 만약 환상향이 내 망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네가 이 명칭을 알 리가 없지.
 그렇지 않으면, 얼굴에라도 쓰여 있었던 걸까?」

유카리는 작은 한숨을 한 번 내쉬었다.

차를 마시려고 찻잔을 들어 올리고, 이미 비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카리는 『공간의 틈새에 팔을 찔러 넣어』 찻주전자를 꺼내었다.

「……설마,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내가 하리라고는.」

부드러운 동작으로 차를 따르고, 하는 김에 내 몫의 차도 따라주었다.

「훌륭해. 내가 졌어, 레이무.
다소의 무리는 있었지만, 결과가 좋다면 전부 좋은 것으로 해야겠네.」

「그렇다면 얼른 해설편으로 넘어가라고. 무슨 목적으로 이런 촌극을 짠 거야?」

유카리의 분위기는 이미 완벽하게 평소의 왠지 수상한 느낌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역시 연극이었나.

「촌극을 꾸민 것은 너 자신이야, 레이무.」

「……나?」

「그래. 이건 99% 네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

 나는 준비된 무대에 있던, 모친이라는 역을 잠시 빌렸을 뿐.
 란이 딸 역인 건 아마, 네 자신이 그 모순을 줄이려고 배역을 바꿔 조정한 거겠지.
 네가 잘 알고 있는 면면이 클래스메이트거나 교사이기도 한 것은 전부 네가 결정한 배역이야.」

……그런가.

그 말대로다.
역할이 주어진 사람들은 거의 내 주관에 의한 편견에 충실했다.
그렇지 않았던 것은 곁에서 끼어들어 온 유카리 뿐이었다는 건가.

「하지만 이거, 평범한 꿈이 아닌 거지?

 지치기도 하고, 아픔도 있어. 오감이 평범하게 활동하고 있어. 꿈이라기엔 너무 리얼한 걸.」

「그러네. 그건 내 능력에 의한 거야.

 즉, 내가 당신에게 새하얀 대본을 건네주고, 거기에 당신은 『이쪽 세계』라는 시나리오와 배역을 써서, 극을 시작했어.
 나는 거기에 옆에서 살며시 모친 역을 바꿨다는 느낌일까.」

방아쇠를 당긴 것은 유카리, 모친 역할의 지위를 고쳐 쓴 것도 유카리.

그 이외는 모두 내가 행한 것인가.

「뭐, 그걸 알았으니 더 말할 건 없어. 얼른 환상향으로 돌려보내줘.」

「어머, 기다리렴. 범인을 알았다면 다음은 동기의 추궁이겠지?」

스스로 말하지 마라. 스스로.

어차피 단순한 변덕이겠지.

「어머, 심하네. 전부 널 위해서인데.」

나를 위해……?

이 꿈이?

「그래. 고인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어 버리는 걸.」

*원문은 '湖の水だって、かき混ぜなければ腐ってしまう(호숫물도 뒤섞지 않으면 썩어 버린다)'.

「의미를 모르겠어.」

「듣고 싶니?」

「이야기하고 싶겠지.」

「응. 이야기하고 싶어.」

이제 맘대로 해라.

어쨌든 최종적으로 환상향에 돌아갈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

「우선, 지금의 환상향에 있는 네 상황이지만.」

「응.」

「죽었어.」

…….

………….

………………네?

「죽었어?」

「그래. 거의 죽었어. 밑도 끝도 없이 죽어버렸어.」

의미를 모르겠다.

완전하게 죽었다는 건 아닌 건가?

「죽으면 코마치의 엉덩일 걷어차면서 삼도천을 건너고, 에이키의 불합리한 심판을 받고, 지옥이나 천국으로 원정 가는 거지?

 전혀 다르잖아. 그렇지 않으면 여기가 천국?」

「완전하게 죽은 것은 아니야.

 육체가 쓸모없게 되었고, 정신만이 내던져져 있는 상태.
 뭐,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으면 죽어 있는 거나 다를 게 없어.」

요컨대 지금의 나는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인가.

잘 모르겠다.
어째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네?」

「응.」

「무리도 아니야. 죽을 정도의 충격을 받으면, 보통 기억도 끊어져.
다행이야.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 아니거든. 설명해.」

「어머. 그렇지만 상당히 충격적이야?」

죽어 있다고 들은 시점에서 충분히 충격적이다.

이제 와서 뭐가 나와도 아무렇지도 않을 터.

「너는 말야, 마리사의 마도 실험의 실패에 말려 들어갔어.

 방진을 치고 있었던 마리사 본인은 상처 하나 없었지만, 우연히 방문했던 네가 거기에 말려 들어가 버린 거야.
 그건 정말 굉장히 심하다고나 할까.
 폭발 중심지의 바로 옆에 있었던 레이무는 거의 즉사.
 2개 있어야 할 파츠가 하나 밖에 없다던가, 본 순간 위장의 내용물이 텅 비게 될 정도로 심한 상태였어.」

「…………그래서, 어디서부터가 거짓말?」

「마리사의 마도 실험부터.」

「전부냣!!」

찻잔의 내용물을 쏟아주려고 휘둘렀지만, 유감스럽게도 벌써 비어있었다.

이 정도로 차가 맛있었던 것을 저주한 순간은 없다.

「그렇다고 하기보다, 마리사의 마도 실험 부분만 거짓말.
네가 치명상을 입은 건 사실이야.」

내가 그런,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스플래터(splatter)하게 되었다는 건가?

「농담이지?」

「다소의 각색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네 육체가 쓸모없는 레벨까지 손상된 것은 사실이야.」

도대체 어째서 그런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넌 말야, 근처의 마을에서 요괴 퇴치를 의뢰받았어.
넌 그 녀석에게 당한 거야. 뭐, 거의 무승부였지만 말야.」

「내가 요괴 퇴치에서 실수를 저질렀다는 거야?」

「무리도 아니지?

 그 레밀리아·스칼렛보다 조금 약할 정도의 요괴가 스펠 카드 룰도 무시하고 진심으로 죽이려고 달려들었으니까.
 탄막 놀이에 익숙해져 있었던 넌 무승부가 되었을 뿐, 잘한 셈이지.」

「……그 분위기를 읽지 못한 요괴는 어째서 스펠 카드 룰을 무시한 거야?
그렇게 원망 받을 만한 짓을 한 기억은 없는데.」

「그저 룰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없었던 거지.」

「……아아, 납득.」

최근 유행하는 KY('空気読めない(Kuuki Yomenai)'의 줄임말. 뜻은 '분위기 파악 못하네')라든가 하는 건가.

나보다는 오히려 그 녀석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당신은 밑도 끝도 없이 죽어버린 거지만, 다행히도 있었잖아? 달에서 온 천재 씨.

 그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났어.」

「내 정신이 이런 곳에 내동댕이쳐져 있다는 건 살아나지 않은 거 아냐?」

「조용히 끝까지 듣도록 해.

 육체 쪽은 수선중이야. 단지, 거기에 걸리는 시간이 약 1개월 정도.
 육체의 손상이 너무 격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정신은 육체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가 계속 되었어.
 거기서 조금 전 동기의 이야기로.」

「고인 물은 흐르지 않으면 썩어 버린다?」

「그래. 육체를 활동할 수 없는 탓에 정신 쪽이 전혀 자극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 되었어.

 그러면 육체는 회복되고 있어도 정신이 쇠약해져 가고, 머지않아 죽어 버려.
 거기서 꿈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육체를 쓰지 않고 정신 활동을 하게 하자는 거야.」

과연.

나 때문에, 라는 것도 반드시 거짓말은 아닌 거다.

「덧붙여서 이쪽 세계의 오늘 아침부터 지금 시간까지는 환상향으로치면 대략 1개월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있어.

 슬슬 육체 쪽도 완전하게 회복했을 테지.」

「그래? 그렇다면 돌아갈 수 있는 거네?」

「그래. 돌아갈 수 있어. 그렇지만───」

유카리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충분한 틈을 두고 나서 말을 이었다.


「───당신, 정말로 환상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뭐?

무슨 의미야?

그런 거 당연하잖아.

「나는 말야. 네가 만들어 낸 이 세계를 보고 생각했어.
아아, 여긴 하쿠레이 레이무의 꿈이구나, 하고.」

「그거야 당연하겠지. 네가 꾸게 해 준 거잖아?」

「그쪽의 꿈이 아니야.

 자면 꾸는 꿈이 아니라,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이라든가, 동경이라든가 하는 그쪽의 꿈.」

꿈……?

「그래. 이 세계는 네가 소망한 거야.

 환상향과 바깥 세계와의 경계에 사는 넌 바깥 세계에 관해서도 알고 있어.
 넌 사실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며, 반 친구와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보내고 싶었던 건 아냐?
 평범하게 가족과 함께 살고, 좀 더 엄마에게 응석부리고 싶었던 건 아니니?」

「그런, 거………….」

「사실 난 보고만 있을 작정이었어.

 그런데, 이 각본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어.
 그래서 모친 역으로서 네가 결정한 배역에 끼어들었어.
 이렇게 해서 네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꿈과 현실을 공평하게 만들기 위해서.」

꿈과 현실을 공평하게?

「그래. 여기엔 네가 바란 것이 있어. 학교도, 반 친구도, 가족도.

 이곳은 현실이 아닌, 네가 만들어 낸 꿈이 세계니까.
 그렇지만 현실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리얼함. 더위도, 아픔도, 요리의 맛도 느낄 수 있어.
 그래. 너만 바란다면, 이쪽 세계가 현실을 대신할 수 있어.
 이곳은 생과 사의 경계이며, 꿈과 현실의 경계이기도 해.
 한 번 더 묻겠어.
 너는, 어느 쪽의 세계를 바라니?」

꿈보다 현실 쪽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정말로 그런 걸까.
오감도 평범하게 있고, 현실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없는 꿈.
여기서 말하는 꿈과 현실은 단순한 형틀의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은 주관적인 생물이다.
객관 같은 건 이해하지 않는다.
이 세계도 주관적으로 보면 현실 그 자체다.
그렇다면, 나는………….

「…………?」

왠지 위화감을 느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보았다.

무언가가 들어 있다.
뭐였지?
내 치마 주머니에서 작은 인형의 머리가 튀어 나와 있었다.





~귀가~ 하쿠레이 레이무





눈부시다.

태양의 빛이 눈꺼풀의 저쪽 편에서 눈동자를 찌른다.
어디에선가 작은 새가 노래하듯 시끄럽게 우는 것이 들린다.
꿈을 꾸고 있었다.
어떤 꿈인지는 이제 떠올릴 수 없지만….
몹시 나른하다.
이미 몇 개월이나 몸을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관절이 으득으득 삐걱거린다.
마치 지금의 지금까지 죽어있었던 것처럼.
…아니, 자고 있었을 뿐이지만.
즉, 그거다.
누구라도 꺼림칙해 할 만한 순간이 찾아왔던 것이다.
요컨대 아침.

「……졸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올려, 공격적인 햇빛을 차단한다.

이불, 이 아닌데. 타월 모포인가 그건가.
그러고 보니 덥다.
지금은 여름이었던가.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다.
일어나고 싶지 않고,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좀 더 자자.
아니, 조금이 아니라 낮 정도까지.

「어~이!」

으겍.

싫은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사다.

「어~이, 레이무!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냐!」

우당탕 툇마루의 복도를 달리면서, 키리사메 마리사는 소리 지른다.

최악이다.
하필이면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을 때, 이른 아침부터 오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졸리다.
자게 냅둬. 부탁이니까.
어떻게 텔레파시로 의사가 통하지 않을까 계속 빌어 보지만,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도 없고.

「적당히 일어나라고. 벌써 깨어났을 거라고 유카리가 말했다고.」

드르륵- 하고 장지문을 열고, 마리사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장지문?

내 방은 문이 아니었나……?

아니,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자자.

「야.」

무시 무시.

「부르고 있잖아.」

큿, 오늘은 끈질기네.

한가하면 게임 센터라도 가서 슈팅 게임이라도 하면 되잖아.

「적당히, 하라곳!」

파앗!

하고, 타월 모포가 성대하게 벗겨졌다.

「으으~ 앞으로 3시간만 자게 해줘.」

「바보 같은 말하지 말고. 한 달은 자고 있었잖아?」

「뭐냐고오- 오늘은 개교기념일이라고 했었잖아~……?」

「잠에 취해 있는 거냐? OK~ 알았어.」

넉넉히 틈을 두고 나서, 마리사는 다음 행동을 취했다.

「(쁘띠) 스타더스트 레바리에.」

「꺗!!」

뺨이라든가, 팔이라든가, 여러 군데에 무언가 뾰족뾰족한 것이 꽂혔다.

놀라서 눈을 뜨면, 눈앞에는 마리사가 있었다.
트럼프 사이즈의 카드를 한 손에 들고, 기가 막힌 것처럼 이쪽을 보고 있다.

「잘 잤어? 레이무.」

「…검네, 마리사.」

「언제나 검다고.」

여기저기에 박힌 별을 뾱뾱 뽑아내는 동안 간신히 머리가 맑아졌다.

그렇구나. 나, 돌아온 건가…….

이어서 우당탕 과격한 발소리.

「마리사!? 레이무가 눈을 떴다고!?」

「오오우!? 빠르구만, 앨리스.」

앨리슨가.

앨리스는 복도를 우당탕 달려올 만큼 소란스러운 녀석이었던가?

「안녕, 앨리스. 걱정 끼친 것 같네?」

「거, 걱정 같은 거 1t도 하지 않았어!!

 나는 한 달이나 자고 있었던 레이무의 막 깨어난 심한 얼굴을 보러 왔을 뿐이야!!」

앨리스는 '흥!' 하고 콧방귀를 끼며, 털썩, 이불 옆에 앉았다.

얼굴을 보러 왔을 뿐인 것에 비해서는 눌러앉을 생각 만만이다.
그보다 단위가 1t이라니, 큰 걸.

「몸 상태는 어때?」

「삐걱대고 있어. 기름칠 하지 않은 양철 인형 같아.」

「거야 그렇겠지. 뱃속도 텅 비었겠지?
죽이라도 가져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마리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애달프게 배가 울었다.
저쪽에서 저녁밥 먹고 왔는데…….
마리사는 거기에 쓴웃음을 짓고, 종종걸음으로 방을 나갔다.
그것과 엇갈려, 이번에는 레이센이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어!? 건강하네!?」

「미안하게 됐네.」

「아, 아하하하하.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한 달이나 자고 있으면, 보통은 일어나는 것도 할 수 없거든. 근력이 상당히 쇠약해져 있을 테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팔을 들면, 어깨보다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것이 소문으로 유명한 사십견(四十肩:40대의 나이에 어깨의 통증으로 어깨의 움직임에 지장을 받는 증상)인가.
아니, 한 달이니까 삼십견(三十肩)?
애초에 자고 있었던 날짜도 아니고…….

「그렇지. 레이센.」

「응, 왜?」

「거의 모든 동식물에 있어서, 유전 정보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을 정식 명칭으로 답하세요.」

「디옥시리보핵산이지만, 뭐야, 갑자기?」

「…….」

「…….」

「………….」

「………….」

「건방지네!!」

「어째섯!?」

곤혹해 하는 레이센을 보며, 난 혼자서 히죽거리고 있었다.

이런 대화도 그대로다.

「레이무.」

「응?」

앨리스 쪽을 바라보면, 눈앞에 인형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공손하게 쟁반에 김이 나는 차를 싣고 있다.

「병상에서 갓 일어났을 때에는 좋아하는 것을 섭취하는 게 제일이겠지?」

「이거 감사.」

앨리스에게 감사를 전하고, 차를 받는다.

하는 김에 차를 가져온 상하이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인형인 주제에 기쁜 듯이 미소 짓는 점이 귀엽다.
의외로 빨리, 인형에게 차 시중을 받을 수 있는 때가 와버린 것 같다.
유감스럽지만, 치마 주머니에 인형은 이제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우왓챠─!!」

부엌 쪽에서 마리사가 중국인 같은 절규를 질렀다.

화상을 입은 것 같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정말.」

앨리스와 레이센이 후다닥 방을 나갔다.

레이센은 응급 처치역이니까 그렇다 치고, 앨리스까지 갈 필요는 없을 텐데.
뭐, 아무렴 어때.

으음~ 하고 기지개를 펴면, 관절이 삐걱삐걱 거렸다.

어제까지 땡볕 아래서 마라톤을 하고 있었을 텐데, 돌아와 보면 극도의 운동부족이라니.
정말이지 달려서 손해 봤잖아.

「잘 잤니? 레이무. 기침(起寢)은 어떠신지?」

「덕분에.」

목소리를 뒤따라, 공중에서 불쑥 머리가 나타났다.

유카리다.

나는 평소 이상으로 싫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렸다.

「어머, 심하네. 그런 표정 짓지 않아도 되잖아?
살아난 것은 내 덕분이기도 하다고?」

「조용히 해, 너구리.」

뭐가 '내 덕분'이냐.

즐기고 있었던 주제에.

「후훗. 그치만 괜찮은 거야?」

「뭐가.」

「이쪽 세계여서. 저쪽에는 네가 바라는 모든 것이 있었는데.」

「없어. 아무 것도 없어.」

「없다고? 그건 네가 소망한 세계잖아?」

「그러네. 그렇지만 마리사도, 레이센도, 앨리스도, 아무도 없었어.」

「있었잖아.」

「틀려. 그건 나야.

 마리사 역의 나. 레이센 역의 나. 앨리스 역의 나.
 내 주관에 의해서 구성된, 내 안의 저 애들.」

저건 내 주관이며, 내가 그러한 역을 연기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반 친구나 가족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혼자였다.
그러니까 나는 선택했던 것이다.
이, 모두가 있는 환상향을.

「하지만, 그렇네. 역시 감사 인사 정도는 해 둘까.」

「어머, 인사는 됐어. 그 대신───」

유카리는 한계까지 그 심술궂은 미소를 짙게 하고는,

「———마마라고 부르렴?」

「죽어 버려.」

나는 거기에 있는 힘껏 욕설로 답했다.





FIN




---------------------------------------------------------------------------------------------------★

■작가 후기
투고 13번째.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신년 첫 번째는 이미 몇 번 우려먹었는지도 모를 학원물.
그렇지만 뭐, 일단 스토리는 연결되고 있는 것이므로 한 가닥 다른걸 지도.
이런 긴 작품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인사)


[캐스트]

하쿠레이 레이무 : 17살. 2학년 D반. 귀가부. 고뇌하는 아가씨. 소녀망상중.
키리사메 마리사 : 17살. 2학년 D반. 육상부. 육상부 최고의 발을 가졌다.
앨리스·마가트로이드 : 17살. 2학년 D반. 공예부. 실은 영국인과 일본인의 하프. 론리(lonely).
이나바 레이센 : 17살. 2학년 D반. 생물부. 토끼귀 머리띠를 착용해선 안 된다는 교칙은 없다.
이자요이 사쿠야 : 17살. 2학년 D반. 귀가부. 방과 후는 메이드 아르바이트. 죠죠 오타쿠.
샤메이마루 아야 : 17살. 2학년 A반. 신문부. 동방 학원 최속의 발을 가졌다. 신문은 인기 없음.
콘파쿠 요우무 : 16살. 1학년 D반. 검도부. 검도부 기대주인 동시에 심부름꾼.

시키 에이키 : 연령 미상. 2학년 D반 담임. 고문 없음. 담당 교과는 윤리. 통칭 야마 씨.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 26살. 2학년 C반 담임. 역사 연구부 고문. 담당 교과는 역사. 화내면 뿔이 자란 듯한 착각.
야고코로 에이린 : 영원의 25살. 2학년 B반 담임. 생물부 고문. 담당 교과는 생물. 나이 이야기는 금구.
사이교우지 유유코 : 27살. 1학년 D반 담임. 검도부 겸 다도부 고문. 담당 교과는 가정과. 통칭 핑크 악마.
호라이산 카구야 : 13살. 담임 없음. 고문 없음. 담당 교과는 국어. 「바보 취급하지 마! 선생님이라고!!」
후지와라 모코우 : 26살. 2학년 A반 담임. 육상부 고문. 담당 교과는 체육. 죽지 않는 불사(不死原).
오노즈카 코마치 : 28살. 2학년 E반 담임. 고문 없음. 담당 교과는 수학. 그레이트 티쳐 오노즈카.
홍 메이린 : 28살. 3학년 C반 담임. 탁구부 고문. 담당 교과는 체육. 중국에서 온 외국인 선생. 중국.
카자미 유카 : 연령 미상. 담임 없음. 원예부 고문. 담당 교과는 생물. 등장은 이름만.

치르노 : 10살. 초등부 학생. 공을 찬 쪽.
루미아 : 10살. 초등부 학생. 공에 맞은 쪽.
모리치카 린노스케 : 25살. 매점 오빠. 마리사의 사촌. 학교 체육복은 반바지인데 어째선지 부르마가 진열되어 있다.

야쿠모 유카리 : 연령 미상. 요리도 잘하고, 미인이고, 박식하고, 게다가 상냥하다. 미망인(!).
야쿠모 란 : 24살. 사장 비서. 퍼펙트 초인. 고양이 넘 좋아.
야쿠모 첸 : 2살. 애완동물인 고양이. 목소리 출연 : ?
신키 : 연령 미상. 영국인 신랑과 국제 결혼한 일본인 부인. 『Alice Chan Love♪』
.


■역자 후기
간만의 팬픽 번역입니다. (´ x `)